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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93 | 이제 남은것은 쌍두가 된 참새의 대가리를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동쪽의 마베라 제1,9,7군은 바르디야 전투에서 김용하 장군 휘하의 감마 집단군에게 몬타나 산맥에 포위되어 전멸해버렸고, 서부의 가다메스 수비군은 남쪽에서 몰려온 베타 집단군과 해안가를 선점한 한랜드 2군단에 의해 아게다비아 강변 방면으로 포위되어 포로 한명 없이 몰살되었다. 11사단장 시디 바라니 소장은 3시간 가량의 가잘라 대교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한랜드군의 아게다비아 강 도하를 막을 순 없었다. 참새의 쌍두가 잘리면서, 이제 서부전선에 알파 집단군을 막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트리넬을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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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 개전 5일째, 연방방위부 국장 직권으로 화학무기 사용이 허가됐고, 그날 오후 9시경 루프트바페는 맛보기삼아 아크다르에 스타인먼 화학이 갓 만든 사린, 소만, VX, 겨자가스 등의 대규모 화학무기 공습을 가했다.[* 이딴 짓이 가능했던 이유는, 웨스타시아 민족도 엄연한 아틀란티스 민족의 후손이라 태생적으로 화생방에 강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베라에도 웨스타시아인들이 적지 않은수가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추방당한지 오래였다. ] 그곳은 마베라군의 남부주 사령부, 일명 맘무트 요새가 있던 도시였다. 이 화학탄 공습에서 도시를 수호하던 제21연대는 6시간만에 전 병력 7만명중 2,300명을 빼고 전멸했고, 몬타나주 사령부는 모두 포로가 되어 마베라 동부 야전군에 거대한 지휘 공백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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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개전 5일째, 연방방위부 국장 직권으로 화학무기 사용이 허가됐고, 그날 오후 9시경 루프트바페는 맛보기삼아 베이다에 스타인먼 화학이 갓 만든 사린, 소만, VX, 겨자가스 등의 대규모 화학무기 공습을 가했다.[* 이딴 짓이 가능했던 이유는, 웨스타시아 민족도 엄연한 아틀란티스 민족의 후손이라 태생적으로 화생방에 강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베라에도 웨스타시아인들이 적지 않은수가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추방당한지 오래였다. ] 그곳은 마베라군의 남부주 사령부, 일명 맘무트 요새가 있던 도시였다. 이 화학탄 공습에서 도시를 수호하던 제21연대는 6시간만에 전 병력 7만명중 2,300명을 빼고 전멸했고, 몬타나주 사령부는 모두 포로가 되어 마베라 동부 야전군에 거대한 지휘 공백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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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 | 맘무트 요새로 총사령부를 이전한 웨스타시아 군부는 아크다르의 뽕맛을 잊지 못하고 2월 26일(개전 6일째)부터 4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부전선 전역에 화학탄 폭격을 가했다. 지속된 가스폭격으로 인해 빈사상태가 된 마베라군을 한랜드 전차부대가 1차로 빠르게 쓸고 간 뒤, 독가스가 어느정도 가라앉으면 후속 보병부대가 2차로 남은 잔당들을 청소하는 전투양상이 수도에 도달할 때까지 쭈욱 반복됐다. 그것은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기동전, 일명 '전격전'이 반백년 남짓한 세월을 넘어 가장 끔찍한 형태로 부활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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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 맘무트 요새로 총사령부를 이전한 웨스타시아 군부는 베이다의 뽕맛을 잊지 못하고 2월 26일(개전 6일째)부터 4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부전선 전역에 화학탄 폭격을 가했다. 지속된 가스폭격으로 인해 빈사상태가 된 마베라군을 한랜드 전차부대가 1차로 빠르게 쓸고 간 뒤, 독가스가 어느정도 가라앉으면 후속 보병부대가 2차로 남은 잔당들을 청소하는 전투양상이 수도에 도달할 때까지 쭈욱 반복됐다. 그것은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기동전, 일명 '전격전'이 반백년 남짓한 세월을 넘어 가장 끔찍한 형태로 부활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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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 99 | 결국 2월의 마지막날이자 개전 7일째 되던 1983년 2월 29일. 남쪽에서 달려온 알파 집단군이 트리넬에 도착함과 동시에 마베라군은 수도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다일타, 아일뢰는 베타 집단군에, 사오그란트(서부 한정)와 몬타나는 감마 집단군에게 점령당했다. 노르드란트는 후술할 해상봉쇄에 의해 고립되어 죽어갔다. 29일 오전 11시경, 트리넬 왕궁에 백십자기가 올라갔다. 그야말로 완벽한 웨스타시아의 승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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